행동경제학자 댄 에리얼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을 읽었다. 인턴 근무를 하게 된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스스로 일을 해 돈을 번다는 사실에 기뻤고, 내가 관심을 가지던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이 사실들만으로도 일을 할 이유는 충분했지만, ‘사람들은 왜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취미가 업이 되면 괴롭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 일로 먹고 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도서관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나보다. 인간은 무슨 상황에서 동기부여가 되는지 궁금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면, 앞으로 나의 선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1. 의외로, 돈이 오히려 동기부여의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사실 왜 사람들이 주에 5일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서. 즉,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만약 월급을 안 준다면 지금 하던 일을 계속 한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다. 하지만 돈을 많이 준다고해서, 동기부여가 더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인센티브로 금전적 보상, 피자 쿠폰, 칭찬 중 하나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 무엇이 가장 큰 성과 상승 효과를 발생시킬까? 가장 적은 상승 효과를 보인 것은 금전적 보상이다. 그리고 인센티브를 받은 다음 날, 현금 보상을 받은 집단의 성과가 아무것도 받지 않은 대조군보다 13.2%나 저조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책에서는 ‘고액 상여금 효과’라고 하는데, 상여금이 많을 수록, 성과 하락의 폭도 커지는 의아한 현상을 나타낸다. 오히려 피자 쿠폰이나 칭찬같은 선의가 직원들의 동기 부여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나타났을까? 저자는 일이란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 행위 그 이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산업화 사회의 관점에서 노동 시장은 개인의 노동과 임금이 교환되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만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은 거래가 아니다. 돈이 아니라면, 인간은 과연 무엇에 동기부여가 되는 것일까?
2. 창조물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편향, 그리고 의미
사람들은 대상에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투자할수록 강한 주인의식을 느끼게 되고 결과물에 대한 애착과 만족감도 더 크게 느낀다. 저자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종이학을 만들라고 하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실험 결과 자기 손으로 만든 작품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거의 맹목적이었다. 실험에 참여한 창작자들은 자신의 창조물을 과대평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큼 그 종이학을 좋아할거라고 착각했다.
중요한 사실은, 종이접기는 실험 참가자들의 정체성이나 직업과는 아무런 관련없는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 참가자들은 그들의 인정 욕구, 성취감, 창작이 주는 보람을 착실히 따라 행동했다 언급했듯이, 우리는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결과물을 사랑하게 된다. 결과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의미는 내가 들인 피와 땀의 양만큼, 시간의 양만큼 만들어진다. 회사의 사장은 경제적인 손익을 따져 몇년간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뒤엎는다. 그래도 직원들을 자르지 않고 월급을 그대로 제공하므로 사장은 직원들이 아무런 불만도 없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직원들은 몇년간 열정적으로 작업했던 결과물이 물거품이 되자 우울해하고, 또 좌절했다. 직원들은 의욕을 잃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생산성에 대해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다. 애덤 스미스는 관리를 통해 동기를 저해하지 않고도 직장 구조를 바꾸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였고, 카를 마르크스는 분업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동기를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하였다. 현대 사회의 많은 직장인들은 기업 전체에서 자신이 맡은 일이 어느 부분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저자는 지식 경제가 점점 심화되는 오늘날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조직을 설계할 필요가 높아진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노동이 가지는 더 큰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직원들은 일에 의미있게 몰입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식 경제에서 직장은 직원들의 신뢰와 선의, 몰입도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3. 신뢰와 선의에 대한 강조
조직은 구체적이고 정의하기 쉬운, 측정 가능한 요소인 가산 측면을 과대평가하고, 정의와 측정이 모두 어려운 요소인 불가산 측면을 쉽게 셀 수 있는 것처럼 다루는 실수를 한다. 이 때문에 회사는 금전적 보상으로 직원들을 컨트롤하려는 실수를 하게된다. 저자는 일의 의미와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요소를 인센티브로 도입해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계. 인간은 단기적 관계에는 굳이 에너지를 쏟으려 하지 않으므로 직원이 장기적 헌신을 가능하기 위해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다라고 한다 (직원 교육 투자, 의료 보험 혜택 제공 등)
신뢰와 선의의 교환은 인간 동기의 가장 중요하고 내재적인 부분이다. 신뢰와 선의는 우리로 하여금 정해진 직무 범위를 벗어나 초과 성과를 달성하고 혁신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기대와 신뢰를 받고 있을 때나 선의를 베풀고자 할 때 의욕이 솟는다. 그리고 성과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 보상을 제공할 때, 신뢰와 선의는 무너지게 된다. (라고 저자가 말하긴 하지만, 보상을 덜 제공하기 위하여 신뢰와 선의를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4. 유산을 남기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
권력을 가진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풍요로운 사후의 삶을 모색했다. 현대에 와서도, 죽음 저 너머로 현생의 무언가를 가져가려는 마음은 종식되지 않았다. 저자는 사람의 많은 동기 유발 요인이 현생보다 긴 무언가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외롭고 상징적인 묘비만 남을 뿐이라도, 우리는 우리가 한 때 사랑받고, 살아 숨쉬었던 존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우리는 유한한 육체의 삶을 넘어 나의 자녀나 업적을 통해 죽음 이후에도 기억되기를 원한다. 부자들은 자선 재단을 설립하고, 작가들이 글을 쓰고, 운동선수들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기네스 기록을 세우기 위해 사람들이 기이한 일을 벌이는 이유이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유산을 보며 그 사람을 떠올린다. 프레디 머큐리는 이미 죽었지만, 1985년에 Live Aid에서 흰 나시 티를 입은 채 보헤미안 랩소디를 열창하는 그의 모습은 유튜브 영상에서,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에서,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계속 살아있다.
5. 무언가를 만들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 주인의식, 성취감에 대한 욕구, 장기적 헌신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같은 목적 의식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런 욕구들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은 밤을 새며 공부를 하고, 밤새 영상 편집을 해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이유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완성된 글을 보면 뿌듯하기 때문이다. 결국 글도 나의 창조물이니까.
웹 개발을 하며 내가 만든 결과물들을 많이 아낀다. AI한테 수십 번 질문을 하며, 머릿 속에 그리던 풀 페이지 애니메이션 효과를 결국 구현해 냈을 때 많이 뿌듯해했다. 지금 인턴 근무를 하면서 꽤 많은 기능들을 구현했는데, 나의 의도대로 기능이 동작하는 이 도메인을 더 완성도 있게 발전시켜 머지 않아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싶다. 배포가 되면 친구들한테 링크를 주고 접속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할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만들고 남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개발과 글쓰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무언가를 만들겠지. 창조물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편향과 객관적인 평가 사이의 괴리에 괴로워할 때도 있겠지만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는 무언가를 계속 남기려 노력할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문득 다시 되돌아 봤을 때, 내가 만든 그 무언가를 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지켜보며 뿌듯해하는 순간이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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