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본가
2023년 1월 1일에 나는 아마 본가에 있었을 것이다. 막 전역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던 때였다. 코로나로 가지 못했던 대학을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신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전공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에 유튜브로 알고리즘 강의를 들으며 백준 문제를 풀었다.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서울로 올라가서 집을 구했다. 집을 꾸미고 적응하는 과정은 나름 재밌었다. 웃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며 적응하다보니 학교에 가게 되었다.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던 캠퍼스는 바쁘고 활기찼다. 그 분위기가 처음에는 참 어색했다.
봄, 1학기
처음 듣는 대면 수업은 큰 강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편안하게 OT만 듣고 나오면 되었지만, 손에는 땀이 났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해서 OT가 끝났을 때는 좀 지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수업들을 듣고, 그토록 오고 싶었던 캠퍼스를 둘러보고, 집에 왔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니 대학 생활에 가지고 있던 약간의 환상들은 사라지고, 그 빈 자리는 익숙함과 지루함으로 채워졌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개강파티에 가고, 동아리에 가입했다. 새로 사귄 사람들과 인스타 맞팔을 하고, 수업도 같이 들었다. 그 때부터 대학생활이 나름 할 만해 진 것 같았다.
캠퍼스를 빨리 밟고 싶어서 엇학기 복학을 했기 때문에 2학년 수업과 3학년 수업을 동시에 듣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섞어 들었는데, 3학년 수업들이 살짝 버거운 감이 있었다. 교수님이 갑자기 과제를 리눅스로 돌리라고 하셨는데, 그 때 나는 리눅스라는 게 있는 것만 알았지 한 번도 실행해 본 적이 없었다. 한 학기만 더 쉬고 복학할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살짝 들었다. 제대로 설치하는 데에만 일주일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찌저찌 잘 해결하기는 했다(우분투 버전을 낮췄더니 되던..).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갈 때 전과를 해서 수업을 들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엄청 노력을 했냐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지만, F는 맞지 않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름 신경썼다. 다행히, 학기가 끝나고 F를 맞은 과목은 없었다. (말 그대로, F를 받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영어 프레젠테이션 동아리와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영어로 작성된 기사에 관한 발표를 들었다. 정해진 분량의 백준(알고리즘 문제 풀이 사이트) 문제를 풀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스터디를 했다. 영어도 백준 문제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특히 백준은 티어 올리는 재미가 있었다. 롤은 골드를 찍어본 적은 없지만, 백준에서라도 골드를 찍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알고리즘 동아리에 다니며 알게 된 것은, 정말 알고리즘 실력이 뛰어나신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들어보지 못한 알고리즘을 말하며 열심히 문제 풀이를 설명하는 분들을 보면 저절로 경외감이 들었다. 언젠가는 저렇게 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언젠가는 2023년이 끝날 때까지 아직 오지 않았다.
여름, 방학
방학이 되자마자 가족들과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일본을 갔다온 것을 빼고는 해외를 가본 적이 없었기에 많이 기대를 했다. 수학여행 때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을 갔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 처음 가봤는데 공항이 커서 조금은 놀랐었다. 여름의 베트남은 많이 더웠지만, 가이드분께서 계획을 잘 짜주셔서 재밌게 즐기고 올 수 있었다.(마지막 날에 반강제로 뭔가를 사야하긴 했지만). 베트남 음식은 입에 잘 맞아서 좋았다. 그런데 패키지 여행이라서 하루 세끼 중에 한 끼는 한식을 먹었다. 음식들은 한국에서 먹는 거랑 맛이 똑같았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별명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롯데마트도 갔다왔는데, 한국 제품이 참 많았다.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방학동안 무엇을 할까 하다가 공부도 하고 새롭게 사람도 만나볼겸 스터디를 했다. 에브리타임에서 파생된 캠퍼스픽에서 스터디를 구했는데, 프론트엔드 스터디와 알고리즘 스터디에 참여할 수 있었다. 프론트엔드 스터디는 신촌에서 오신 분도 있고 저 멀리 경기도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어디에서 만날까 하다가 건국대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덕에 건국대 근처에 있는 카페들을 꽤 알게 되었다. HTML에서부터 React까지 온라인 수업들을 듣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파트를 나눠 사이트 클론코딩을 했다. 이 스터디를 통해 프론트엔드의 기초적인 부분을 익힐 수 있었다. 모두 좋으신 분들이라서 끝까지 화목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알고리즘 스터디는 바킹독 알고리즘 강의를 들으며, 강의와 관련된 알고리즘 3문제를 풀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스터디에 갔을 때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던 형들이어서 조금은 놀랐다. 나랑 어떤 형은 C++로 문제를 풀고, 다른 형은 파이썬으로 문제를 풀었다. 그래서 문제 풀이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C++로 이리저리 돌아갈 때 형이 파이썬으로 아주 간단하게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C++ 버리고 파이썬으로 넘어갈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C++이 익숙했기에 그냥 C++로 계속 문제를 풀었다. 스터디가 끝나고 형들이랑 학교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 덕에 학교 근처에 있는 식당들을 꽤 알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토리파이탄. 지금까지 먹어준 라멘 중에 가장 맛있었다. 형들과는 개강하고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학교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언제 또 볼 기회가 있지 않을까.
친구들과 빠지를 가기로 했다. 수영을 아예 못했던 나는 호수에 빠져 죽지 않을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빠지 가기 일주일 전에,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빠지에 가기 전까지 수영을 익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물에 대한 무서움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아침 일찍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왔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했다.
(수영 후기는 예전에 블로그에 써놨는데, 밑의 링크를 누르면 확인할 수 있다.)
https://quickchabun.tistory.com/58
가을, 2학기
이번 학기는 2학년 수업 4개, 1학년 수업 2개, 온라인 교양 수업 1개를 수강했다. 전과생이라서 필수적으로 들어야되는 1학년 수업들을 못 들었었다. 그래서 이번에 JAVA프로그래밍과 선형대수학을 수강했다. JAVA는 예전에 온라인 강의로 독학한 적이 있어서 조금은 익숙했는데, 선형대수학은 2학년 과목들보다 어려웠다. 처음에는 이해가 갔었는데, 점점… diagonal, rank, eigenvector 같은 단어들이 막 쏟아지더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완벽히 이해는 못해서 시험 때 머리를 쥐어짜내서 최대한 쓸 수 있을만큼 쓰려고 노력했다. 다른 과목들은 선형대수학만큼 어렵지는 않았지만, 6과목을 듣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1학기와 마찬가지로, 다행히도 F를 맞은 과목은 없었다. 하지만 웃을 수 있는 성적은 아니었다. 헛웃음은 나오더라. 그저 자기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위로해주었다.
개강을 앞두기 며칠 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는데, 영어 동아리 총무가 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총무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 ‘왜 나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운영진? 생각해본 적도 없긴한데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동아리 총무가 되었다. 인수인계도 받고, 동아리 대표자 톡방에도 들어가고, 신기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주로 동아리 뒷풀이 장소 예약 및 정산을 했다. 그리고 공지할 일이 있으면 톡방에 공지도 했다. 동아리에서 정할 일들이 있으면 임원진들과 같이 회의를 하고, 또 실행했다. 이런 과정들이 꽤 재밌었다. 이번 학기 동안 동아리가 괜찮게 굴러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실수할까봐 조마조마했던 적도 꽤 있었으니까.
그리고 동아리를 하나 가입했는데, 파트를 나눠서 학기 중에는 스터디를 하고, 방학 때는 팀을 짜서 프로젝트를 하는 동아리였다. 나는 웹 파트에 지원했다. 지원을 하려는데 500자로 대답하는 질문들에 지금까지 개발했던 경험을 작성해야 되서 조금 당황했다. 이 동아리 꽤나 본격적이구나. 그래서 하루동안 카페에서 열심히 작성하고 제출하니 다행히 서류는 합격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게 아니라 또 면접을 봐야했다. 나 개발 좀 허접한데. 식은 땀이 났다. 면접을 보기 5분 전부터는 거의 패닉이 왔다. 면접을 보러 방에 들어가니 3명이 나를 반겨주셨다. 면접을 보는 15분 동안, 계속 손에서 땀이나 닦아내야했다. 돌이켜보니 왜이리 긴장했나 싶다. 그래도 답변할거는 다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합격했다고 문자가 왔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OT를 하고,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일주일동안 30분~1시간 분량의 강의를 듣고 워크북과 미션을 해서 제출해야했다. 그리고 특정 요일에 모여서 1시간 정도 스터디를 진행했다. 프론트엔드 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학교 수업보다도 더 열심히 들었다. 피그마가 제공되고 css로 화면을 구현하는 미션도 있었다. 6시간 정도 코딩을 하고 원하는 화면과 거의 비슷하게 구현을 하고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 신기한데. Typescript에 대해서도 배우고, React도 배웠다. 프론트엔드에 대한 많은 개념들을 배우고 또 워크북에 작성했다. 또 미션을 수행하며 화면을 구현했다. 어떨 때는 학교 과제와 겹쳐서 살짝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흥미가 떨어지지는 않아서 열심히 할 수 있었다. 10주 동안 진행했는데 스터디랑 미션 전부 완료해서 OT 때 냈던 보증금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번 학기동안 가장 뿌듯했던 경험이었다.
다시 겨울, 2024년
다시 겨울이 왔다. 종강을 맞이했다. 이번 방학 때 가장 메인 이벤트는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다.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게으름 부리지 않고 내 몫을 다 해내고 싶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팀원들과 어떻게 협업해야 되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체득하고 싶다.
그리고 아침마다 다시 수영장을 가고 있다. 저번 방학 때 자유형을 배웠으니, 지금은 배영을 배우고 있다. 자꾸 몸이 가라앉아 코에 물이 들어가서 좀 버겁긴 한데, 계속 하다보면 배영도 마스터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팔을 돌리는 방법도 배웠으니 조만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에도 꾸준히 연습해서 개발 능력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 회사에 가더라도 내 몫을 해낼 수 있고, 누군가를 가르칠 수도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다. 그러려면 아마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느려도 좋으니 걸음을 멈추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처럼 최대한 계속 무언가를 쓰려고 한다. 글쓰는 것은 옛날부터 좋아했으니까. 노션이든, 블로그든, 계속 기록하며 쌓아두고 싶다. 쓰는 실력을 늘리고 싶다면 읽는 것도 늘려야할 것이다. 최근에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옛날의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과분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감사할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올해도 부디, 감사할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족들을 포함해서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소원을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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